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방문객‘ 중)
한 사람에 대해 논하고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도,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했던 사람이거나, 혹 문제적 인물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럴 때는 일단 누구도 부인할 수밖에 없는 팩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오랜 세월 ’방문객‘들을 관찰해왔던 기자로서 더 없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어왔다.
용인사람 이우현,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1957년 용인군 원삼면(현 용인특례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초등교육은 집에서 멀지 않은 좌항초등학교에서 받았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 잇기가 힘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야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그런 시기였다. 그나마 운동신경이 있어 공을 좀 찼던 게 학업을 이을 수 있던 계기가 됐다. 학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상황에서, 장학생을 시켜준다는 제안에 이끌려 인천시 소재 선인중학교 축구부에 몸담았다. 이후 축구로 이름났던 영등포공업고등학교로 스카우트 되기도 했지만, 어려웠던 집안형편으로 더 이상의 도움을 받지 못해 끝내 학업을 포기하고 1975년 하사관 118기로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다.
1978년 해병대 만기 전역 후에는 스물두 살의 젊음을 만끽하는 대신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길거리 수박장사를 시작으로, 분식점, 레스토랑, 자동차 정비공장, 제조업, 도매업 등 13가지 생업을 이으며 20년 세월을 쏜살같이 보냈다. 밑바닥 생활을 시작으로 젊음을 무기 삼아 하나하나 성취를 일구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었다.

용인시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우현은 임기 4년 중 후반기 2년을 용인시의회 부의장으로 도시의 발전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앞장섰다. 그러한 이우현의 열정과 능력은 용인 시민으로부터 합격점을 받는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용인시의회 원삼면 선거구에서 무소속 후보로 단독 출마해 시의원에 당선됐으며, 4년 임기를 마친 2006년까지 용인시의회 의장으로 활약한다. 당시 용인의 수많은 현안 해결에 이우현은 지금까지도 큰 자부를 갖는다.
더 큰 꿈을 꾸었다. 2006년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 입당,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용인시장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더욱 단단해지며 내실을 다지는 시간으로 삼는다. 못다했던 학업에도 뒤늦게 도전, 2008년에는 용인대 문화관광학과를 졸업했고, 2010년에는 용인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드디어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우현은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용인시 갑 선거구에 뛰어들어 현역 의원을 꺾고 국회의원 타이틀을 거머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용인시 갑 선거구에 출마, 재선에 성공한다. 용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란 타이틀을 넘어, 주로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중앙 무대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계파로는 친박으로 분류되었는데, 친박 좌장 서청원의 왼팔로 불릴 정도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곧 인생 최대의 시련이 찾아왔다. 2017년 11월 불법정치자금(공천헌금) 수수건이 불거져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으며, 2018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같은 친박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최경환 의원과 함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해 8월, 서울중앙법원은 징역 7년과 함께 벌금 및 추징금 판결을 내렸는데, 2019년 5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판결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이후 이우현에게는 죽음같은 어둠의 기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손목에 수갑을 찬 자신의 사진이 버젓이 올라 있었고, 사실이 아닌 부분까지 사실처럼 적시되어 공공연하게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었다. 고민에 휩싸였다. 손녀딸처럼 인터넷만 검색한 사람들이 세상 나쁜 사람으로만 자신을 알 것이라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그걸 가만 놔둘 순 없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27년 정치 인생을 더듬으며,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다소 잘못 판단하고 행한 게 있다면 솔직한 모습으로 반성하고 이해를 구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자서전 집필은 12월 중순이면 마무리돼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자서전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우정과 의리는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 왠지 기시감이 드는 자서전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표적사정으로 수감됐던 친박연대 서청원 전 의원이 2010년 광복절 특사로 의정부교도소 문을 나서며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었다. 당시는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였다. 변함없이 그를 믿어준 지지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멘트였고, 박근혜는 변함없는 의리로 화답했다. 출소 후 서청원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당선에 혁혁한 공적을 남긴다. 『우정은 변치 않을 때 아름답다』라는 동명의 평전이 출판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우현은 이 자서전 제목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남기려 했던 걸까? 힘겨웠던 시절 편지를 보내거나 면회 접견을 통해 위로하고 마음을 나눠준 이들에 대한 ’우정‘의 마음은 당연히 담겨 있어 보인다. 헌데 그것만은 다가 아닌 느낌을 준다. 대대로 용인에서 나고 자라고, 용인에서 27년 동안 정치활동을 펼치며, 용인과 맺은 ’의리‘를 강조하려는 마음이 엿보이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까? 용인을 위해 좀더 역할이 있다고 결심한 것은 아닐까? 질문 들어간다.
적지 않은 나이에, 5년 8개월 수감생활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 건강은 어떠신가요?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적폐 청산에 매달렸을 당시 별건에 별건, 그리고 다른 별건 수사가 이어지며 그 충격으로 스텐스를 4개나 심어야 했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도, 건강하게 살아 나가야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티었습니다. 하루 30분 열심히 걸었고,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맨몸 근력운동에도 힘썼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건강합니다.


보람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기억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몇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용인시 죽전동과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연결도로가 문제가 되었을 때 삭발단식을 하며 해결했던 게 떠오르고요, 용인의 낙후된 스포츠 인프라 확보를 위해 영등포공고 동문이기도 한 허정무 총감독을 모시고 원삼면에 용인시축구센터를 만들었던 것도 보람됩니다. SK반도체클러스터가 들어오며 지금은 용인 다른 곳으로 이전한 상태지요.
용인 동백지구에 연대의대 세브란스병원을 유치한 것도 큰 보람입니다. 이렇다할 대형 종합병원이 없던 용인에 큰 경사인데,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제가 담판을 지으며 착공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또한 장례식장, 화장장, 납골당, 수목장 시설을 갖춘 용인평온의숲 개장과 용인한국외국대학교부설고등학교(용인외대부고) 개교 등도 용인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시의회 의장 시절 공을 들였던 사업입니다.
용인지방공사도 서울 면적만큼이나 넓은 용인에서의 각종 사업을 위해 발족시킨 지방공기업이지요. 처음에 기대했던 만큼 지금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데, 좀 더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용인의 발전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 날들이 떠오르며, 더 많은 일들이 생각나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이쯤 할까 합니다.

하지만 용인시의 발전을 위해 절대 놓칠 수 없는 사업이었죠. 당시 친박 핵심이던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해 새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강력히 설득했는데, 다행스럽게 결단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 면에서 박 전대통령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셈이 됐습니다. 당시 국회에 속기록이 50여차례 남겼을 정도로 국토교통위원으로서 전력을 쏟았고, 이후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를 수차례 방문하며 집요하게 설득해 두 개의 용인 IC(북용인(모현), 남용인(원삼))를 얻어내며 용인 발전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던 거죠. 용인시 원삼면에 이천의 3배가 넘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고속도로 및 원삼IC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로 인한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 등 경제적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한 사람을 기사로 남긴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의 부담이 기사를 마무리하며 가벼워졌다. 이우현이라는 정치인의 비 당파적 태도를 확인하고 나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정치적 시련을 겪었지만, 설사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땅에, 어떠한 보복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시의원 등 지방 정치인에게 여야가 왜 필요하냐고도 목소리 높인다. 오직 시민만 보고 지역 발전을 위해 뛰면 된다는 것. 무소속으로 오랜 풀뿌리 정치활동을 했고, 필요에 의해 나중에 여야를 두루 경험하기도 했던 지역 정치인, 그렇기에 내 편 네 편의 진영논리가 판치는 시대, 이쪽 저쪽 감안하며 애써 중심을 잡고 기사 한 줄이라도 써야하는 시대에 알고보니 이 ‘방문객’은 비교적 편안한 인터뷰 대상자였다.
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한다. 지금도 용인에는 27년 정치활동을 하며 그가 남긴 여러 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그것을 가까이서 보고 접하는 용인 시민들이 더 잘 알아서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상전벽해 용인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희망이기도 하다.
writer _유성욱 기자 / photo _조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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