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vo My Life / 전임 (사)한국생활연극협회 정중헌 이사장, “연극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설 수 있는 무대입니다”

안정미 기자 / 기사승인 : 2026-02-28 10: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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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에서 교수, 그리고 생활연극 제작자로 멋진 인생 3막을 열다

[욜드(YOLD)=안정미 기자] (사)한국생활연극협회 2대에 걸져 연임했던 정중헌 이사장은 1969년 1월, 조선일보에 입사하며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군 복무와 베트남 파병을 거쳐 37년. 쉼 없이 현장을 누빈 끝에 2006년 정년퇴직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에너지는 ‘퇴직’이라는 두 글자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그때부터 활기찬 그의 ‘이모작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예전엔 평균 수명이 짧았죠. 그런데 지금은 80세, 90세까지 그 이상으로 사는 시대잖아요. 60에 일을 그만둔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창립 기념 공연 김도훈 연출 맹진사댁 경사단체 촬영
연극이라는 인생 3막
60이 되던 해에 그는 언론사에서 퇴직을 하고 이듬해 서울예술대학에서의 강의를 시작으로 꾸준히 많은 강의를 이어가며 ‘공연예술’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자 시절에는 취재와 기사를 작성하는 것 이외에도 방송 비평을 쓰기 위해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방송을 다시 공부했고, 언론사 퇴직 후에는 박사과정에서 하고 싶던 공연예술을 전공하며 무대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정중헌 이사장은 공연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 공연예술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연극이나 공연을 보는 것을 즐기며, 활기찬 노후를 보냈다. 그러던 중 교수 은퇴 후 관객으로만 머물렀던 연극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졌고, 그는 노년의 나이가 무색하게 ‘생활연극’이라는 새로운 활동에 몸을 담았다. 정중헌 이사장은 그렇게 생활연극의 제작자로 멋진 인생의 3막을 열었다.
주호성 연출 우리읍내’ 배우(무덤지기 역)로 출연
보는 예술에서 하는 예술로

그의 인생을 바꾼 장면은 해외 공연 축제에서였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공연예술이 도시 전체를 축제로 물들이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고.

“왜 스포츠에는 생활체육이 있는데, 예술에는 ‘생활예술’이 없을까?”

체육도 그렇듯 음악 역시 이미 ‘생활음악’이라는 것은 활성화돼 있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호회 합창단, 기타 모임 등은 활발했다. 그러나 연극은 달랐다. 연극은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취미의 일환인 음악, 운동과는 달리 관객 앞 무대에서, 어디에서도 배우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관람하다 보면, 그리고 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사람들이 조금씩은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2015년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 참가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무대에 서보고 싶잖아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꿈, 다들 마음 한 켠에 있죠. 그런데 기회가 없을 뿐이에요.”

그는 아마추어들이 연극을 배울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017년, 정중헌 이사장은 사단법인 형태의 생활연극 단체(한국생활연극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리고 6년간 이사장을 연임하며 전국 지회와 축제를 만들고 ‘생활연극’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생활연극을 위한 배우 체험, 최영환 연출 나의 살던 고향은 용산커튼콜
전국으로 번진 작은 무대들
한때 전국 광역단체 단위로 10여 개 지회, 기초 지역 단위로는 50여 개 가까운 생활연극 모임이 활동했다. 매년 ‘생활연극 축제’와 ‘생활연극 대상’을 개최해 지역 극단들이 무대에서 경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생활연극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프로 연극 단체와의 갈등, 협회 내부의 시선, 그리고 재정적 어려움도 있었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추진해 온 그는 경계가 분명한 그 사이의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에게는 ‘당신은 연극인이 아니다’라는 말도 들을 정도로 현실적 고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안에는 긴 시간 버텨온 사람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연극을 20편 넘게 제작했고, 무대에도 서봤으며, 극단을 창단하고, 생활연극 축제도 만들어 진행한 정중헌 이사장.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연극을 사랑하는 연극인이다.

극단 ‘생활’, 그리고 무대 위의 변화

협회 활동을 내려놓은 뒤 그는 ‘극단 생활’을 창단했다. 그의 나이 80을 바라보고 있던 때다. 그의 숙원이던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형태의 극단이다. 그러나 극단을 창단하고 꾸려가며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일에는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과 직결돼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알게 됐다. 그는 회원들의 참가비를 받고, 정부지원금을 신청하며 공연을 제작한다. 제작한 공연으로 인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아니고, 오히려 개인적 희생(경제적)이 따르는 일에 가까웠다.

“연금도 나오는데 왜 힘들게 이런 걸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어요.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고 싶은 좋은 일을 하며 남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 계속 일하는 것이 돈보다 좋다고 할까요.”

극단에는 주부, 직장인, 은퇴자, 교수 출신, 심지어 영화배우 출신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인다. 한 여성은 사업 실패 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가 연극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이는 젊은 시절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다가 은퇴 후 무대에 섰다며 기뻐한다.

“공연이 끝나고 가족들이 꽃다발을 들고 와서 ‘엄마 멋있었어’라고 말해주는 순간, 그 표정을 보면 제가 왜 이걸 하는지 알겠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선물하는 일입니다. ‘뿌듯하고, 참 보람되는 일이다’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0177()한국생활연극협회 창립총회 내빈으로 참석해 축사를 해주신 ()이순재 선생과 함께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함께 할 연극

올해 여든을 넘긴 그는 가끔 공연장에서 자신만 나이가 많은 관객인 것 같아 쑥스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1시간 반 이상을 앉아 있는 일도 예전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제작을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한다. 그래도 그의 대답은 하나다.

“앉아 있을 수 있는 만큼, 시간이 허라가하는 만큼 계속 보려고요.”

그는 나이를 숫자로 말하는 대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이라는 표현을 썼다. 연극은 결국 사람 이야기이기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할 이야기가 더 늘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중헌 이사장은 흘러온 세월만큼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물론, 다양한 이야기들을 연극으로 만들고, 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그려 나가는 것이라 한다.

그의 꿈은 단순하다. 마을마다 하나씩 작은 생활연극 극단이 생기는 것이란다. 어찌보면 단순하지 않은, 어려운 소원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은퇴 후 20~30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대에 문화 활동 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에 덧붙여 ‘감상하는 문화’에서 ‘참여하는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제는 보는 예술이 아니라 하는 예술이에요. 무대에 서보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올봄 낭독극과 여름의 시민연극제, 그리고 가을에는 준비하고 있는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계획을 갖고 있는 정중헌 이사장. 그의 2026년은 일반인들의 ‘참여하는 문화’에 날개를 달아줄 계획으로 이미 가득 차 있다.

기자, 교수, 생활연극 제작자, 배우. 한 줄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의 이력.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지금도 무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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