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ife / 사회생활의 이색현상 > 그녀의 세 가지 증후군

신성식 기자 / 기사승인 : 2024-10-03 05: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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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심리학에서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가리켜 증후군이라고 한다. 성년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남성들의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피터팬 증후군’,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여자들이 겪는 ‘슈퍼우먼 증후군’, 주부들이 명절마다 가사에 대한 부담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명절 증후군’ 등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당신도 혹시 어떤 증후군을 겪고 있지 않는지."

[스마트시니어뉴스=조현철 기자]  ‘스탕달 증후군’은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이 레니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를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뛰어난 명작을 감상한 뒤 순간적으로 생기는 자아상실, 정서혼란, 피해망상 등의 증상을 뜻한다. 예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오르세 미술관전에 동행한 J라는 친구는 밀레의 <만종> 앞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삶에 대한 경건하고 엄숙한 성찰에 숙연해진다며 촉촉해진 눈으로 말문까지 막힐 정도였으니, 돌이켜 보면 그 순간 그녀는 ‘스탕달 증후군’을 겪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최근 또 하나의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으니, 바로 ‘파랑새 증후군’이다. 마테를링크의 작품 「파랑새」의 주인공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를 결국은 집에 있던 새장 안에서 발견한 이야기에 빗댄 ‘파랑새 증후군’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증세로 불경기 속에서 짧은 기간 동안 이직을 반복하는 직장인을 뜻한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사상 초유의 취업난을 뚫고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직해버리는 신입사원들에 대한 고용주들의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껏 채용해 놨더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 연봉이 적다, 회사가 비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가뿐히 떠나는 그들에게 과연 당신들의 능력과 역량은 그만한지 묻고 싶을 것이다. 그게 다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과잉보호를 받고 성장한 20대들이 사소한 업무 스트레스에도 나약함을 드러내는 까닭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옳은 말이다. 업무 성과에 비해 막연히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착각하거나, 직장 내 갈등의 원인들을 자신에게선 찾지 않고 이직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은 경력관리에 마이너스인 미성숙한 태도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낭비를 초래한다.

하지만 입사 5개월 만에 이직을 고민하는 J처럼 ‘파랑새 증후군’으로 분류되기엔 억울한 사람들도 많다. 30대에 부족한 경력으로 재취업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잠시 J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지칠 대로 지쳤다. 설 연휴 때도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갈 정도지만 겨우 업무량을 소화하고 나면 또 다른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야근하지 말라고 잔소리들을 땐 약이 바짝 오른다. 연봉은 턱없고 잘해봤자 성과급도 없이 돌아오는 건 수고했다는 한 마디 뿐이다. 인력 충원이 절실하지만 고용주는 느긋하고,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면 불합리한 책임만 되돌아온다. 그래도 열심히만 하면 언젠간 알아줄 테니 충성하라는 충고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존재했던 이전 세대들에게나 통하는 얘기가 아닐까.

더더군다나 요즘 20대들은 업무성과에 대해 현실적인 보상을 해주지 않는 직장에 머나먼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공적인 일 때문에 사적인 삶까지 무조건 희생하길 바라는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한다. 획일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파랑새 증후군’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에 심도 있는 합숙 면접을 할 만큼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할 인재가 간절하다면, 기업에게도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매너리즘을 경계하고 합리적인 팀워크를 유지하며 성과를 공유하고 있는지 등을 돌아볼 일이다. 그럼 적어도 J처럼 어쩔 수 없이 이직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만한 능력과 인성을 갖춘 구직자들이 여기저기 떠돌 까닭이 줄어들 테니까.

마지막으로 잠 못 이루는 고민마저 유쾌하고 털어놓는 J가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심각하게 우울한 ‘스마일 증후군’이 아니기를 바란다. 최소한 그녀는 회사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수수방관하는 ‘갤러리족(골프장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구경꾼에서 유래)’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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