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다영 컬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죽음의 도시를 지나 다시 인간에게로

손다영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5-11-19 0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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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오스트리아에서 클래식 신동으로 꼽혔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즈음 미국으로 넘어가 영화음악에 종사했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코른콜트가 23세 때 작곡한 오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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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손다영 칼럼니스트] 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에리히 볼프강’이라는 이름은 음악비평가였던 아버지가 모차르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붙인 것이다. 이름 덕분이었을까. 10살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를 구스타프 말러가 듣고 ‘천재’라고 부를 정도로, 그는 빈 음악계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당시 빈 음악계에서는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중심음이 없는 ‘무조 음악과 12음 기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음악은 자아도취적 팽창을 지나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나아간다. ‘인간적임’에서 벗어나 때로는 원시적으로, 때로는 완강하게 기존의 아름다움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코른골트는 조성이 느껴지는 낭만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이어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푸치니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빠져들게 만드는 선율이 있고 서사가 느껴지는 음악이다. 음악이 진행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빈 예술계에서 터져 나오는 ‘새로움’에 대한 압박 이전에, 음악 신동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신동으로서 완벽해야 하면서도 근대적 전위 정신을 이끌어가는 젊은 음악가에 대한 기대를 충족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20년,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발표했다. 파격적이게도 함부르크와 쾰른에서 동시에 초연이 이뤄졌다. 이미 세계가 주목한 신동이었기 때문에 여러 도시가 경쟁하는 상황이었고, 당대 신문들이 ‘초연 전쟁(Premierenkrieg)’이라고 언급할 만큼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함부르크는 ‘낭만적 아름다움’을, 쾰른은 ‘근대적 구조’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근대적 구조’라는 것은 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것일 뿐, 음악의 ‘시스템’에 관한 평가는 아니었다. ‘천재지만 시대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라는 비평처럼, 모더니즘과는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조음악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낯섦을 느낀다. 당연하게 여겼던 질서에 의심을 품고 ‘하나의 중심, 하나의 해석, 하나의 감정 구조’에서 벗어나기를 택한다. 서사가 감정을 지배하는 대신 사고의 흐름이 구조가 되면서, 주체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이 아닌, 새 언어를 위한 준비 단계였다.

1933년 히틀러의 집권 이후 1938년 3월 12일, 독일군은 무력 충돌 없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고 비엔나 시민 일부는 히틀러를 맞이하며 광장에서 환호했다. 바로 이날 유대인의 상점이 파괴되고, 언론·방송·대학교가 즉각 통제되었으며 오스트리아 정부는 해산되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한 주”라고 선포하며, 1000년이 넘는 역사 끝에서 정체성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유대인 음악가는 즉각 추방되었고, 지성과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는 텅 빈 껍데기가 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 소식을 들은 코른골트는 곧 빈에서 초연할 예정이었던 오페라이자 나치의 검열 대상이 된 《제국의 사기꾼》 공연 취소 소식을 듣게 되었고, 빈에 남아 있는 집과 악보와 공연 계획을 뒤로하고 생존을 선택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영화음악을 쓰며 ‘극 음악’을 이어 갔다. 《로빈 후드의 모험》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에 이르게 된다.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가 연출을 맡은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에서 파울 역의 로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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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가 초연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그는 순수 클래식 음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청중들의 열띤 반응과는 달리,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영화적이며 지나치게 선율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의 청중이 선택한 것은 과거의 영광이나 관성에 의한 구시대적 선율이 아닌,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진실된 감정이 아닐까.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연설문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의 마지막 부분이 떠오른다.

“무엇이 좋은 문학인가에 대한 정의를 지나치게 편협하거나 보수적으로 설정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는 중요하고도 훌륭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온갖 종류의 새로운 방식을 동원할 것이고, 그중에는 때때로 당혹스러운 것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줄곧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장르와 형식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들 중 최고를 키우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위대한 정서적 힘을 지닌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에 불과한 의식의 심연을 밝혀내 왔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둔탁한 강제성이나 폭력적 규범, 혹은 과잉된 감정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곤 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 거친 흐름을 비켜 서서, 인간을 훨씬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언어가 닿기 어려운 내면의 결을 포착하고, 누구도 대신 말해줄 수 없는 감정의 미세한 움직임을 드러내며, 어떤 문학보다도 깊은 곳에서 우리 존재의 무게를 건드린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일은 결국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이며, 타인을 편견 없이 알아가려는 태도 자체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과정, 그것이 음악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장 따뜻한 유산일지 모른다.

 

 
▲ 손다영 아르켈 컬쳐 대표 

* 손다영 
- 손다영 아르케컬처 대표 바이올리니스트
-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학사 졸업䟃
-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석사 수료 

현재 아르케컬처 무지카 클래시카 음악회(2022~), 금요반달클래식클럽(2022~), 용인일보 오피니언(2025~) 강연 및 기획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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