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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파, 사진집 <더 라스트 리조트>(1983~1985) 수록작, 잉글랜드 뉴 브라이턴 해안가의 아이들. |
16일 서울 창동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마틴 파: 위 아 마틴 파’는 총 595점에 달하는 작품을 통해 파가 어떤 작가였는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예술 사진이 된 일상전시장에 나온 파의 출세작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앞에 서면 일단 웃음이 난다. 흐린 하늘, 쓰레기가 뒹구는 모래사장, 그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태연히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1983~1985년 공업도시 리버풀 인근의 쇠락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서민들을 담은 연작이다.
1986년 이 연작이 공개되자 영국 사진계는 둘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파의 적나라한 사진이 노동계급을 조롱한다며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엉망진창인 영국의 현실을 해부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파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찍은 것은 그 흉한 해변에서도 기어이 삶을 즐기려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우스워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엔터테인먼트로 위장한 진지한 사진을 만든다”고 답했다. 이런 그가 1994년 세계 최고 권위의 보도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매그넘)에 가입을 신청하자 사진계는 술렁였다. 전쟁과 혁명의 현장을 기록해 온 선배 회원들의 눈에 파는 ‘중요한 것을 전혀 찍지 않는 사진가’였다. 격렬한 논쟁 끝에 매그넘은 결국 파를 받아들였고, 그는 훗날 이 조직의 회장(2013~2017)까지 지냈다.
파는 1991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 각지의 사진관에 들어가 그곳 방식 그대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1997년에는 패키지 관광 상품으로 평양을 방문해 체제 선전 기념비 등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담았다. 한국에서는 에버랜드의 인파와 커플티를 입은 연인, 마트에 간 아이 등을 찍었다. 두 시리즈를 나란히 걸어 놓은 덕분에 관객은 남북 사회의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는 전시 도록에 이렇게 썼다. “만약 마틴 파가 ‘이런 건 나도 찍겠다’는 관람객들의 중얼거림을 듣는다면 그는 기쁘게 웃었을 것이다. 2026년의 우리는 모두 마틴 파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10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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