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photo/PIXABAY |
[욜드(YOLD)=정화용 칼럼니스트] 펜잘, 게보린, 사리돈. 우리에게 익숙한 진통제들이다. 이 약들의 공통점을 알고 있는지? 바로 카페인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카페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떠올린다. 그리고 불면, 두근거림, 속쓰림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함께 떠올린다. 그러나 카페인은 잠을 깨우는 성분이 아니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에게 유용한 의약품의 유효성분을 갖고 있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커피에서 약리적 가능성을 발견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900년경 이슬람의 의사이자 화학자·철학자인 라제스(Rhazes)는 커피에 대한 최초 기록을 남겼다. 이후 커피가 유럽에 막 전파되기 시작한 17세기, 사람들은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치료 효과를 가진 약재로 바라보았다. 1652년 런던에 오픈한 커피하우스 광고에는 커피가 두통, 부종, 통풍을 비롯한 여러 증상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물론 당시의 광고는 임상 시험을 기반으로 과학적인 근거를 갖추었다고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당시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남아 있다. 현대 신경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윌리스는 1660년 동료 의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침과 오후에 커피를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에 매우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라며 한 환자에게 커피를 규칙적으로 마시게 하라고 조언했다. 카페인도, 아데노신 수용체도 몰랐던 17세기의 의사가 경험을 통해 커피의 효과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
| ▲photo/PIXABAY |
시간이 흘러 커피의 성분은 실제 의약품 속으로 들어간다. 1916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아나신(Anacin)은 아스피린과 카페인을 주성분으로 하는 진통제로 현재도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이다. 1984년 미국의학협회지 JAMA에는 카페인의 진통 보조 효과를 분석한 연구가 발표됐다. 연구진은 여러 임상시험을 종합해 같은 정도의 진통 효과를 얻으려면 카페인이 없는 진통제의 용량이 카페인을 함께 사용한 경우보다 약 40% 더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는 이후 FDA가 카페인을 진통 보조 성분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카페인은 여러 복합 진통제에 사용되고 있다.
카페인의 작용기전을 이해하려면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이 활동하고 에너지를 사용하면 아데노신이 체내에 증가한다. 아데노신이 쌓이며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하게 되면 뇌의 활동은 억제되고 수면 압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아데노신 수용체에 결합할 수 있다. 그러나 아데노신과는 달리 카페인은 수용체를 활성화하지 않다. 커피를 마셔 카페인이 체내에 들어가면 피로의 신호가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여 잠시 피로를 잊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각성뿐 아니라 두통과 통증 조절에도 관여한다.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해 신경계의 통증 전달과 뇌혈류에 영향을 주고, 진통제의 효과를 높이는 보조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엑시드린(Excedrin)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아스피린, 카페인을 함유한 이 약은 1998년 미국 FDA로부터 편두통 치료 목적으로 승인받았으며,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커피 속에서 매일 만나는 카페인이 실제 편두통 치료제의 유효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 ▲photo/PIXABAY |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카페인은 두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많은 양을 섭취하다 갑자기 중단하면 카페인 금단 두통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섭취량을 서서히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반복되는 두통을 커피나 진통제로 계속 버티기보다는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커피를 단순한 음료로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물처럼 하루 종일 마시고, 또 어떤 사람은 몸에 나쁘다며 무조건 피한다. 그러나 커피는 분명한 약리작용을 가진 성분들이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좋은가, 나쁜가’라는 단순한 판정이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약과 독을 가르는 것은 결국 사용법이다. 어쩌면 커피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토마스 윌리스가 환자에게 커피를 권했던 기록은 37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커피를 제대로 마시고 있을까?
[저작권자ⓒ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