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가슴앓이' 양하영, 음악으로 사랑에 보답하는 포크 여신 "통기타는 나의 인생"

안정미 기자 / 기사승인 : 2025-11-08 0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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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하나 로 음악계의 한 획을 그으며, 음악 인생 40년
- 자존감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삶은 언제나 감사

[욜드(YOLD)=안정미 기자]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여성 포크가수를 만났다. 유원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의 자리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통기타를 들고 노래한다. 그 모습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그때 그 감성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한다. 통기타 하나로 음악계의 한 획을 그으며, 음악 인생 40년을 지낸 그녀의 마음을 들어본다.
 
1980년대 포크음악이 유행하던 시절 양하영은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MBC 대학가요제에서 감성적인 가사의 ‘가슴앓이’로 데뷔한 그녀는 한마음이라는 듀오 포크그룹으로 활동하며 ‘갯바위’ 등의 명곡을 발표해 청춘들의 감성을 어루만졌다. ‘친구라하네!’, ‘촛불 켜는 밤’, ‘영원한 사랑인줄 알았는데’,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등 주옥같은 곡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최신곡 ‘해당화’로 그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녀의 오랜 노래들이나 한마음의 노래는 라디오나 포크 음악회 등을 통해 자주 들릴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서정적인 맑고 순수한 화음이 돋보였던 한마음, 통기타로 연주하는 잔잔한 어쿠스틱 사운드의 포크 음악이기에 대중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휴식 같은 음악이 돼 줬다. 한간에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1980년대였기에 사람들의 마음 속 ‘순수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해 더욱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런 힘이 있었다.

포크라는 문화
7080이라는 타이틀로 지금까지 포크음악을 대표하고 있는 그녀는 꾸준히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지내왔다. 7080 타이틀을 만든 선배 가수들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통기타 음악을 작업하는 등 노력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맞이한 1990년대, 복고 열풍이 불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 유행을 하던 모든 것들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또 한 차례 유행을 하며 포크 음악 역시 다시 유행했다. 그리고 그 패턴을 이어받아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다시금 7080 음악이 부활해 활기를 띄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 기타 하나 매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80년대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이제는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유행을 따라가기도 하고, 연예인인 우리는 유행을 만들거나 앞서가기도 하면서 대중들과 교류해 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난 것들이 어느 정도 시절을 거치게 되면 ‘새로움’으로 느껴지게 되면서 또 다시 유행이 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유행을 따르고 함께 하다 보니 나중에 그것은 ‘문화’가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포크 음악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포크 음악은 항상 곁에 있었어요. 제 인생은 그렇게 ‘통기타’로 만들어 졌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의 문화 속에서도 감미로운 통기타 연주의 서정적인 포크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통기타가 인생”이라 말하는 포크의 여왕 양하영이 잘 가꿔놓은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미사리 1호 가수
포크 음악의 시대가 사라져가던 한 시대도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K팝이, 트로트가 음악의 전부가 되던 시간들에서는 통기타를 집어 든 포크 음악인들은 사실 어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라이브카페를 찾아 노래를 불렀다. 소위 미사리 1호 가수로 불리며 라이브 음악의 끈을 놓지 않은 양하영이다. 그녀의 라이브 카페 가수로의 삶을 말할 때 ‘양평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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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 라이브 카페 붐이 일기 전 그녀는 먼저 양평으로 이사 했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데 서울의 아파트에서는 강아지와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땐 그랬다. 사랑이 많은 그녀는 유기견을 보호하고, 유기견과 함께 지내기로 결정하면서부터 강아지들을 위해 양평으로 이사를 결심했고, 그렇게 미사리와의 인연도 시작됐던 것이다. 무명 가수들이 라이브 노래를 부르던 곳에서 유명 가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그녀가 미사리 1호 가수가 되며 미사리는 라이브 카페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라이브 카페문화의 성행에 그녀가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통기타를 든 오래된 가수들이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줬다.  

음악을 즐기는 포크의 여신
그런 그녀지만 쭉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아니었겠는가. 왕성한 활동 후 설 무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나 방송에 대한 열망 등 그녀에게도 ‘우울감’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타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어느 날 방송이 안 들어오고, 프로그램이 줄면서 저희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어린 친구들이 등장해 무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우울하기도 했어요. 제가 한창일 때 선배들을 보면서 이미 알고는 있던 사실들이었고, 아 나에게도 미래에 이런 시간이 오겠지 단단히 마음을 먹은 줄 알았는데...막상 그 시간이 오니까 마음이 힘들더라구요. 불안한 마음이 참 컸던 것 같아요.”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간은 누구나가 겪을 것이고, 그것이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들은 그 상실감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대중의 사랑으로 살던 사람들이기에 그 허전함, 허탈함이 더 클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 시간을 겪는 그녀에게 어느 날 한마디의 위로가 전해졌다고.

 

 

“양하영밴드로 활동중인 김수한 연주자가 음악을 불안해하는 저에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선배님, 왜 음악을 불안해하세요? 음악계에 한 획을 그으신 분이잖아요. 이제부터는 즐기세요!’ 그러면서 이제는 진짜 하고 싶은 즐거운 음악을 하라고, 통기타로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하라고 그렇게 말 해주는데, 저에게 굉장히 큰 용기를 줬던 것 같아요. 맞아, 이제부터는 즐겨야지, 그렇게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통기타는 나의 인생, 팬들의 사랑은 나의 비타민
용기를 얻는 한마디의 위로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됐다. 앞만 보고 달렸던 20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짠한 20대의 양하영이었다. 참 잘했다고 너무 애썼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지금의 그녀는 리즈시절보다도 지금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30대 때는 40살의 계획을 세우고, 40이 되면 50대의 계획을 세우면서 5년씩, 5년씩 계획과 실천을 꾸준히 이뤄가며 지금의 나이가 됐다. 못 이룬 것이 없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노력한 모든 것들을 실천하고 이뤄왔던 그녀이기에 자존감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삶이 언제나 감사하다.

 

“좌절을 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노래를 들어주고 좋아해 주시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어떻게 노래 몇 곡 들으시고는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실 수가 있어요?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작은데 열 배, 스무 배 더 큰 사랑을 주시는데 그게 너무 감사 한거죠. 인생을 돌아보면 늘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진짜 열심히 하고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는 통기타 음악을 계속하며 마니아들과의 교류도 더 열심히 하고 언제나 제 음악을 사랑해주는 분들을 위해 잘 살려고 합니다.”  

그동안 유원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전임교수로 대학 강단에서 꾸준한 강의로 학생들과 음악을 함께 이어 온 그녀는 교수의 자리에 있어도 여전히 소녀처럼 겸손함을 이야기 한다. 대중의 사랑으로 잘 살아온 만큼 더욱 여유가 생긴 이제는 더 좋은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겠다 전하는 양하영. 힘들 때면 녹음해두었던 팬들의 환호와 응원소리를 귀에 대고 몇 번씩 반복해서 들어본다는 그녀에게 팬들은 비타민이다. 요즘말로 역조공 같은 느낌일까, 팬들이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큰 사랑을 주고 싶다는 그녀의 예쁜 마음이 지금의 그녀를 이렇게도 예쁘고 귀하게 만든 것 같다. 서로가 비타민이 되어주는 그녀의 음악 삶, 통기타 인생에 늘 함께 하는 소중한 마음이 늘 변함없기를 소망한다.

writer _안정미 기자 / photo _조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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