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연구자들은 ‘동백아가씨’가 1965년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왜색 근절’이란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노래를 부른 이미자는 여론에 편승한 경쟁 레코드사가 당국과 결탁해 ‘금지곡’으로 묶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 진실이 어떻든, ‘동백아가씨’를 둘러싼 창작자들의 송사는 서슬 퍼런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대중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며 정서의 힘으로 유통됐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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