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춘선에서 우리들은 청바지에 기타 메고 비록 바다는 아니었지만 조개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뚜아에무아와 라나에로스포 그리고 송창식을 그리워했었다.
경춘선은 1939년 7월 25일 사설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성동역(城東驛)∼춘천 사이의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서울의 시가지 확장에 따라 성동역∼성북역 구간은 철거되고, 성북역을 기점으로 하는 단선철도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의 마지막 열차가 폐지되고,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었다. 현재 서울에서 춘천 81.3km를 잇는 경춘선 복선전철은 상봉에서 출발하여, 퇴계원, 마석, 가평, 남춘천역 등을 거쳐 춘천역까지 운행되고 있다.
당시 젊은이들은 토요일 오후 석유버너 혹은 고체연료 그리고 코펠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냄비도 괜찮았다. 경춘선을 탄다는 설렘이 있었기에. 이렇듯 이런 저런 취사도구를 들고 청량리역 시계탑에 모였었다. 지금이야 없어진 교련복에 청바지, 아니면 검정색 물들인 군복바지, 신발은 운동화였지만 군화도 참 많이 신고 나타났었다. 여자들이야 남자와 달리 신경을 썼지만 그래도 백보 오십보였다 물론 교련복이나 군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물건은 기타였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기차 안에서 담배피우는 것은 물론이고, 음주에 가무까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또 이런 행동과 모습에 대해 누구 하나 뭐라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다.

자금은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조혜란(57세)씨는 “저는 명동에 있는 계성여고를 다녔어요. 고2 때 걸스카우트 대원이었던 저는 대성리 여학생풀장으로 MT를 갔는데 첫날밤 맹장으로 구급차에 실려 다시 서울로 온 적이 있어 경춘선, 대성리, 여학생풀장은 평생 못 잊고 있어요. 근데 지금도 여학생풀장은 있나요?”라고 깔깔거렸다. 그러나 경춘선은 결코 학생들만의 낭만은 아니었다. 경춘선의 지리상 많은 군인들이 이용했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나 귀대하던 군인들 모두가 경춘선을 이용했다. 그리고 20~30대 직장인들도 경춘선에서 낭만을 즐겼다. 특히 휴가 때 제일 많이 이용했었다. 청바지에 기타 메고 비록 바다는 아니었지만 조개껍질 묶어 그녀에 목에 걸고, 뚜아에무아와 라나에로스포 그리고 송창식을 그리워했었다.

그러나 경춘선의 가장 큰 아픔은 전쟁일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37년 7월 개통된 경춘선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고통인 한국전쟁을 고스란히 겪었다. 수많은 군인과 탄약이 이 경춘선을 통해 전쟁터로 옮겨졌었다. 그리고 포성이 멈추고 전쟁에서 벗어나나 싶었을 때 베트남 전쟁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이뤄졌던 해외 파병이었던 베트남전쟁 역시 경춘선은 함께했다. 오음리 골짜기에서 훈련을 마친 젊은이들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운명을 예견한 듯 경춘선 열차 밖으로 편지와 돈을 묶어 내던졌다. 돈은 가지되 편지만은 고향으로 꼭 부쳐달라는 그들의 마지막이고 처절했던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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