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ife / 그때 그시절 / 여로(女路), 최초의 야외촬영한 국민 드라마

신성식 기자 / 기사승인 : 2023-11-02 11: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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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4월 3일 오후 7시30분 첫 방송된 일일연속극으로 첫 선을 보여

 

 

 

[스마트시니어뉴스=신성식 기자] ‘여로’는 100% 스튜디오 방송으로 진행되던 당시의 관행을 깨고 송추 등에서 야외 촬영을 한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또 ‘여로’가 방송되는 오후 7시 30분이 되면 거리는 너무 한산해져 경찰들도 놀라기도 했었다.

이남섭 극본, 이남섭 연출, 장욱제, 태현실, 박주아, 최정훈, 송승환 등이 출연한 ‘여로’는 1972년 4월 3일 오후 7시30분 첫 방송된 일일연속극으로 첫 선을 보인 ‘여로’는 무려 211회 방송되며 당시 최장수 인기 드라마로 기록됐다. 불우한 운명 속에 태어난 분이(태현실)라는 여인이 가난에 못 이겨 술집 작부, 사창가를 전전하다 최주사집의 ‘모자라는’ 아들 영구(장욱제) 씨받이로 들어갔으나 쫓겨나는 수난을 겪다가 다시 부와 행복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속극을 통해영구 역의 장욱제씨와 그의 부인 분이로 나온 태현실씨는 당시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다. 당시 90회 예정이었던 "여로"는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방송 횟수를 두 배 이상 늘렸다.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의 연장 방영된 작품이 되었다. 그 감동 덕분에 ‘여로’는 1973년과 1986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0년대 초반에는 악극으로도 재현돼 태현실·장욱제가 새롭게 추억을 자극하기도 했다.

1972년 당시 ‘여로’는 각 가정의 수도꼭지를 잠그게 했고 거리는 한산했다. 순전히 ‘여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TV 앞으로 모여 앉았다. 분이 역의 주인공 태현실은 모든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의 시선 속에 절망과 아픔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여성 캐릭터로서 애정을 한몸에 모았다. 하지만 ‘여로’는 무엇보다 ‘영구’ 장욱제의 연기로 더욱 빛났다. 기계충 자국이 남은 머리, 덥수룩한 수염과는 어울리지 않는 앞니 빠진 입으로 내뱉는 혀짤배기 발음. 연기자 장욱제가 연기한 영구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사상 가장 명징한 ‘바보’ 캐릭터로 남았다. 또한 그 바보스러움은 가장 순수한 면모이기도 했다. “우리 샛시” 분이를 그리며 찾고 찾은 끝에 마침내 재회하는 순간, 영구가 보여준 순수함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가슴은 더욱 찢어졌고 미어졌다. 영구와 분이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한국전쟁을 겪으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온 많은 시청자들의 삶을 되비춰준 것이기도 했다.

‘여로’는 100% 스튜디오 방송으로 진행되던 관행을 깨고 송추 등에서 야외 촬영을 한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로’가 방송되는 오후 7시 30분이 되면 거리는 너무 한산해져 경찰들도 놀라기도 했었다. 당시 텔레비전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동네에서 좀 산다는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었다. 그 집에만 ‘여로’를 시청 할 수 있는 텔레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초 중 고 학생들은 만화가게에서 이 드라마에 시청하였다. 마치 김일 프로 레슬링을 보듯이.

또한 이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바람에 가전 회사들이 톡톡히 덕을 보았다. 그 해 말 211회로 막을 내릴 때까지 화제가 되었던 "여로"는 대한민국 50년 ‘50대 히트상품’ 과 PD들이 뽑은 ‘20세기 베스트 드라마’로 뽑히기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곳곳에 ‘여로다방’과 ‘여로빵’이 생기고 서울 시내에는 여러 곳에 이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었던 극중 식당인 ‘감골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도 했었다. 저작권과 아무 상관없 시절이라 가능했겠지만. 아무튼 당시 ‘여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 할 정도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당연 있는 법. ‘여로’의 주인공 장욱제는 이 드라마를 끝으로 본의 아니게 은퇴화고 말았다. 지난 3월3일 방송된 KBS ‘여유만만’에 출연한 장욱제는 “당시 바보 연기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큰어머니도 나를 못알아보더라”며 “당시 그 정도로 바보연기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장욱제는 “바보 이미지를 없앨 겸 연기활동을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회로 돌아가 사업을 하다 보니 연기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더라”고 은퇴 이유를 털어놨다. 즉 다른 드라마에 출연해도 너무 강했던 영구 이미지 때문에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리고 세월이 흘러 영구 이미지는 이창훈과 심형래를 통해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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