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life / 그때 그시절, 4전5기 신화는 살아있다, ‘홍수환 신드롬

신성식 기자 / 기사승인 : 2024-10-24 23: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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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니어뉴스=신성식 기자] 70년대 동양의 ‘작은 알리'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홍수환은 타고난 승부사다. 그의 타고난 승부사 기질은, 70년대 ‘작은 알리’ ‘4전5기’라는 신화적 영웅적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나아가 한국프로복싱의 화려한 개회기를 꽃피운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한국복싱, 우리의 history, pride이고, 꿈엔들 못 잊을 nostalgia가 아닐까!    
 
홍수환의 출현 이전, 한국의 프로복싱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66년 김기수가 홈링으로 불러들인 니노 벤베누티에게 가까스로 15회 판정승, WBA세계Jr미들급 왕관을 쓴 것이 고작이었다.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등극은 적잖은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 ‘하면 된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하지만 그 꿈과 희망, 용기의 본격적 실현은, 74년과 77년 홍수환이 2체급타이틀쟁취로 우뚝 서기까지, 10여 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의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홍수환이 지핀 불길에 힘입은 70년대, 세계챔피언탄생은 줄을 이었다. 유제두, 염동균,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 등 무려 5명의 철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랑스러운 챔프대열에 끼어든 것이다. 유제두는 75년6월7일 일본에서 와지마 고이치를 7회KO승으로 WBAJr미들급 타이틀을 땄고, 염동균은 76년11월24일 홈링에서 로얄 고바야시에게 15회판정승 WBCJr페더급 왕관을 썼다. 김성준은 78년9월30일 홈에서 네틀로이 보라싱을 3회KO승 왕좌에 올라앉았고, 김상현도 그해 12월30일 사엔삭 무앙수린을 홈으로 불러 13회TKO승 왕위에 등극했다. 79년3월18일, 역시 부산 홈링에서 박찬희는 ‘대학교수’ 미겔 칸토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WBC플라이급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일시에 쏟아진 쾌거로 팬들은 열광 또 열광했다. 70년대, 어찌 복싱 붐이 일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었을까!

홍수환이 ‘작은 알리’로 세계복싱계의 주목을 끈 건, 74년7월3일 적지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심판전원일치판정승을 거두고, WBA밴텀급 new champion이 되었을 때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홍수환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은 별로 없었다. 적지라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현지까지, 무려 30여 시간의 힘겨운 여정이 과연 정상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홍수환은 해냈다. 첫 라운드 한 번의 녹다운을 끌어낸 도전자는 신들린 것처럼 챔피언 테일러를 두들겨 부수었다.

 

신바람 난 그의 주먹은 5라운드에 2번, 14회 또 한 번을 추가, 도합 4번의 녹다운을 얻어냈다. 빠른 스텝을 이용한, 재치 넘친 그의 파이팅은, 어쩜, 세기의 영웅 스페셜리스트 무하마드 알리를 보는 듯 했을까. 15회판정승, 뉴 챔피언이 된 홍수환을 외신은 너나할 것 없이 ‘작은 알리’라고 극찬하기 서슴지 않았다. 국내선 한층 열광적 유행어가 ‘홍수환 신드롬’을 부채질했다. 아들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엄마의 ‘그래, 수환아. 대한국민 만만세다!’ 모자가 연출해낸 감격의 전화대화는 사람들의 감동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챔피언 먹었어!’라는 유행어는 감격적 승리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홍수환의 두 번째 신화는 77년11월26일 파나마에서 만들어졌다. 파나마시티 실내체육관은 우리의 홍수환과 그곳의 신예영웅 엑토르 카라스키야가 펼치는 WBA신설Jr페더급챔피언결정전을 관전하기 위해 1만5천여 관중이 운집했다. 그러나 17살, 11전11승11KO로 ‘지옥에서 온 악마’라 불리는 카라스키야를, 과연 홍수환이 해치울 수 있을까,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라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2회, 눈 깜짝할 사이, 홍수환은 카라스키야의 레프트를 턱에 맞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홍수환은 벌떡 일어났다.

 

피를 본 ‘악마’가 가만 놔둘 리 만무했다. 치면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기를 도합 4번. 때마침 울린 종료 공 소리로, 위기의 2라운드는 가까스로 그렇게 넘겼다. 3회. 그렇다. 모두들 홍수환의 ‘처절한 최후’가 벌어지리라 여겼다. 하지만 홍수환의 카운터펀치가 ‘악마’의 안면을 강타한 순간, 시계는 갑자기 거꾸로 돌았다. 뒷걸음치다 로프에 의지해 있는 카라스키야를, ‘타고난 승부사’가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무차별 난사 끝에 회심의 레프트로, 4번이나 자신을 다운시킨 ‘악마’를 다시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4전5기’의 신화는 그렇게 씌어졌다. 다분히 행운도 따랐다. 전통적으로 한 라운드 3번 다운되면 ‘자동KO’처리되는 ‘3녹다운시스템’을 시행해온 WBA. 한해 전 무슨 연유인지 파나마연례총회에서 WBC처럼 ‘프리녹다운시스템’으로 관리규정을 바꿔놓은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홈링의 카라스키야가 떠안은 꼴이 되었지만. 

 

홍수환은 비록 한국 최초로 2체급석권의 위업을 일궈냈지만, 왕좌에 오래 머물러 있진 못했다. 밴텀급, Jr페더급 타이틀을 겨우 각각 한 차례 방어했을 뿐, 쉽게 왕관을 내주는 바람에 팬들의 실망이 그만큼 컸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은퇴 후 홍수환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그곳의 생활도 여의치 않았다. 끝내는 전 부인과 이혼,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그리고 그 무렵, 현역생활 중 로맨스(?)로 딸까지 둔 가수 옥희와의 재회가 이뤄졌다. 다닥다닥 먼지가 앉았던 ‘타고난 승부사’의 캐릭터도 서서히 다시 꿈틀되기 시작했다.

홍수환의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의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4전5기’같은 신화가 다시없는 교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살아 숨 쉬는 홍수환의 캐릭터는 ‘살아남기 위한 교훈’으로 目下,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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