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의 일상과 생각 / 아리랑, ‘세계 1위’가 아니어도 충분히 위대한 노래

박정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5-09 08:44:02
  • -
  • +
  • 인쇄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BTS의 새 앨범 ‘아리랑’이 영국 앨범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하다 보니, 며칠 전 고향 선배로부터 받았던 ‘아리랑’ 관련 영상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아마도 내가 음악인이라 그런 자료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 여겨 보내주신 듯한데, 마침 나도 예전에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영상이었다. 그때는 그저 기분 좋은 이야기쯤으로 웃고 넘겼지만,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기보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의 내용은 이렇다.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모여 우리 민요 ‘아리랑’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로 선정했으며, 그것도 무려 82%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떠돌던 근거 없는 인터넷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애초에 세계의 작곡가들이 모여 민요의 순위를 매기는 공식적인 국제 대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가치는 그런 이야기와는 무관하다. 아리랑은 이미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 자체로 완벽한 인류의 자산이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순위’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감정이 담긴,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온 살아 있는 문화’라는 점이다. 특정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져 온 노래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아리랑을 자꾸 과장하려 하는가. 자부심이 때로는 사실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자부심은 정확한 이해에서 나온다.

영상에서는 아리랑을 我理朗(아리랑)이라는 한자로 풀이하며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언뜻 그럴듯하지만, 이는 나중에 덧붙여진 인위적인 해석에 가깝다. 아리랑은 특정한 한자로 가둘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날것 그대로의 숨결이자 소리의 결이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아리랑 고개’에서 유래했다는 설,
메아리 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에헤야' '어허야' 같은 의미 없는 후렴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설 

 

이처럼 하나로 단정되지 않는 기원 자체가, 오히려 아리랑이 지닌 본질을 말해준다. 그것은 누군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삶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가사 또한 마찬가지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구절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를 ‘진리를 거스르면 벌을 받는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이다. 이 표현은 저주가 아니라, 떠나는 임을 향한 애틋한 원망이자 해학이다. 부디 발이라도 삐끗하여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이 끝까지 놓지 못한 마지막 농담 같은 것이다. 그 속에는 슬픔과 유머가 동시에 살아 있는 한국적인 정서, 이른바 ‘한’의 미묘한 결이 담겨 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은 특정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불려온 ‘공동체의 노래’이다. 가사 속 ‘고개’는 우리가 살아가며 넘어야 할 수많은 시련을 상징하며, 이별의 노래는 동시에 다시 만날 희망과 인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감정을 담은 하나의 살아 있는 유산이다. 

우리는 왜 아리랑을 사랑하는가. 그것이 세계 1위라서도 아니고, 거창한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고향으로 내려가 배낭 하나 메고 산과 들을 누비는 친구가 있다. 그가 보내온 사진 속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그 답을 찾는다. ‘일일청한 일일선(一日淸閒 一日仙)’, 하루 마음이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라는 그 말처럼, 우리 아리랑 또한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도 오늘 하루 마음이 맑으면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가짜 이야기와 과장된 찬사에 감탄하기보다, 오늘 저녁 아리랑 한 소절을 조용히 읊조리며 그 속에 담긴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세계와 음악으로 만나는 BTS의 눈부신 활약 속에서도 아리랑이 지닌 깊은 울림과 한국적 정서가 오래도록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주요기사

+

Mid Life

+

Inter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