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숙 컬럼 [식(食)과 마음] / "장독대 아래의 시간"

윤경숙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1-29 11: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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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풍경 photo/pixabay
[욜드(YOLD)=윤경숙 칼럼니스트] 장독대는 늘 바깥에 놓여 있었다. 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고, 비와 눈을 견디며 한 계절을 넘겼다. 그런데도 장독대는 언제나 묵묵했고, 그 아래에 깃든 시간은 조용히 발효되고 깊어졌다.장독대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장이 아니다. 콩이 눌리고, 소금이 녹고, 햇살과 바람이 번갈아 스며드는 동안 재료는 스스로를 내려놓고 다른 무엇으로 변해간다. 그 느린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장독대 아래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방식이다.

장독대를 들여다볼 때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사람도 이처럼 외부의 날씨를 받아내며 익어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햇빛만 있는 날은 없고, 늘 좋은 바람만 부는 날도 없지만 그 모든 겹침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다.

장독대의 시간은 빠르지 않다. 서둘러 뚜껑을 열면 아직 익지 않은 냄새가 올라오고, 조금만 더 견디면 어느 날 문득 깊은 향이 완성된다. ‘기다림의 맛’이란 말은 장독대처럼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지혜다. 그리고 장독대 아래엔 늘 사람이 있다. 누군가 아침 햇살을 확인하고, 장독의 위치를 조정하고, 소금을 덧입히고, 먼지를 닦아준다. 발효의 주인은 자연이지만, 발효의 책임은 사람의 마음이 맡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빨리 얻으려 하고, 빨리 해결하려 하고,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러나 장독대는 말없이 알려준다. “깊은 맛은 언제나 느린 시간에서 온다”고. 서두름 속에서는 진심이 만들어지지 않고, 성급한 마음에서는 향기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의 관계도 장독대 아래의 시간처럼 익어야 하는지 모른다. 조금 멀찍이 두고, 꾸준히 보살피며, 적당한 바람과 햇살을 허락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맛이 드는 것처럼.

오늘도 장독대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에게 조용한 질문을 건넨다.

“당신의 삶은 지금, 어떤 속도로 익어가고 있나요?”

* 윤경숙 (윤가명가 셰프ㆍ한국외식조리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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