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내가 유럽 유학 길에 올랐던 1980년은 해외여행 자유화조차 까마득하던 시절이었다. 낯선 서구 사회의 문물 하나하나가 경이롭고도 두려웠던 그때, 취리히를 거쳐 잘츠부르크 공항에 첫발을 디뎠다. 모든 것이 막막하던 순간, 고맙게도 한 친절한 택시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외곽의 모스슈트라세(Moosstraße)에 자리한 작은 민박집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 있었고, 출국부터 도착까지 스무 시간이 넘는 여정에 긴장감까지 더해져, 짐을 풀자마자 그야말로 깊은 잠 속으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이른 새벽이었을까. 유난히 해가 빨리 밝는 듯해 문을 열고 민박집 밖으로 나섰다가 나는 그만 털썩 숨이 막히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마자 거짓말처럼 거대한 알프스산맥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말의 알프스 정상에는 이미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고, 붉어지는 여명 속에서 빛나는 그 거대한 장관은 두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유럽에서 보낸 첫 밤의 고단함과 새벽녘 알프스가 준 경이로움을 안고 맞이한 그날 아침,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까마득히 먼 40여 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때 느꼈던 낯선 당혹감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혼자 웃음이 난다.
민박집 다이닝룸 창가 쪽 테이블에는 이미 서너 명의 서양인 여행객이 자리를 잡고 조용히 아침식사(Frühstück)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도 미리 익혀 간 외마디 인사,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을 연발하며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잘 삶아진 계란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배도 출출했던 터라 고민 없이 계란 하나를 집어 들고, 늘 해 오던 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테이블 모서리에 톡톡 두드렸다. 금이 간 껍질을 날렵하게 벗겨내려던 순간, 식탁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 살짝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비하나 경멸이라기보다는, 낯선 구경거리를 바라보며 재미있어하는 눈빛에 가까웠다.
‘아, 뭔가 잘못됐구나.’

직감적으로 손을 멈추고 옆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은 계란을 껍질째 조그만 나무 틀, 에그 컵 위에 올려두고 작은 스푼으로 윗부분의 껍질만 톡톡 쳐서 살짝 벗겨낸 뒤, 그 구멍으로 알맹이를 알뜰하게 파먹고 있었다. 반면 테이블 모서리에 계란을 깨뜨려 훌러덩 까먹으려던 나는, 그 순간 그들의 식탁에서 통용되는 작은 문법 하나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나 역시 그들의 방식을 따라 하느라 작은 숟가락과 한참을 씨름해야 했다. 당시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교양이라기보다, 낯선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청년의 눈물겨운 노력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계란 하나가 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밴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성향을 ‘아비투스(Habitus)’라고 불렀다. 요즘에는 이 단어가 때때로 ‘상류층의 품격을 배우는 법’이나 ‘성공한 사람의 생활 방식’처럼 소비되기도 하지만,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는 그런 자기 계발의 언어보다 훨씬 깊은 개념이다. 가정환경과 교육, 계층과 문화, 그리고 살아온 경험이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말투와 몸짓, 취향과 판단, 심지어 식탁에서 계란을 먹는 방식에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 아비투스는 타고난 환경에 의해 평생 갇혀 지내야 하는 감옥일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알프스의 장엄함에 압도되고, 잘츠부르크의 식탁에서 민망해하던 그 아침에 내가 깨뜨린 것은 계란 껍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세계의 좁은 울타리 하나도 함께 깨뜨렸는지 모른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방식이 세상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것, 낯선 세계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문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문법을 배우는 데에는 때로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견디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방식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문화, 새로운 태도를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손짓과 말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기도 했다. 힘든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느 식당을 가든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이것은 유학을 다녀왔다는 훈장이 아니다. 낯선 세상에 던져졌던 한 청년이 타인의 노고에 감사하는 태도를 몸으로 익혔고, 그것이 오랜 시간 내 삶에 배어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어쩌면 ‘내가 새로 더한 아비투스’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부르디외의 의미에서 아비투스는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스스로 골라 입는 옷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시간이 너무 깊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자신의 익숙한 방식을 조금씩 흔들어볼 수 있다. 낯선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태도를 관찰하고, 때로는 자신의 서투름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성향을 몸에 들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환경이라는 옷을 입고 출발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옷만을 평생 입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책과 여행과 경험을 통해 조금씩 다른 옷을 덧입혀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낯선 사람에게 어떤 시선과 말투를 건넬 것인가, 내가 누리는 편안함 뒤에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기억할 것인가. 이런 작은 선택과 실천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것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태도가 된다.

계란을 숟가락으로 파먹든, 식탁 모서리에 깨서 먹든 그것 자체로 우열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낯선 세계와 마주쳤을 때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그리고 내가 몰랐던 것을 기꺼이 배우려는 마음일 것이다. 더 나아가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감사할 줄 알고, 조금 더 교양 있는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의 태도를 가꾸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 옛날 알프스 자락의 작은 민박집 식탁에서 주춤거리며 계란 껍질을 벗기던 한국 청년. 그때의 어색한 손짓은 단순히 계란 하나를 먹는 방법을 배운 순간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세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스스로 가꾸기 시작했던 아주 작은 첫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