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공연이면 사람들이 보러 오지 않을까?”
예술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좋은 음악과 뛰어난 연주, 완성도 높은 무대가 있으면 관객은 결국 알아봐 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공연장을 운영하거나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물어야 한다.
“이 공연이 좋다는 사실을 관객은 어떻게 알게 되는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달라진다. 좋은 공연과 잘 팔리는 공연이 꼭 같은 공연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 팔리는 공연이 좋은 공연이 아니라는 뜻도 아니다.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있을 뿐이다.
무대의 기준과 객석의 기준
좋은 공연은 무대 위에서 판가름 난다. 연주자의 기량이 뛰어난지, 해석이 설득력 있는지, 연출과 무대가 작품을 잘 받쳐 주는지, 공연 전체의 완성도가 높은지를 본다. 객석이 다 차지 않았다고 작품의 가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관객이 많았다고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예술적 완성도와 시장의 반응은 서로 다른 변수다.
잘 팔리는 공연은 객석에서 판가름 난다. 공연은 막이 오르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이 표를 사고,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찾고, 관람한 뒤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전할 때 비로소 시장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잘 팔리는 공연은 다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누가 이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가. 왜 지금 봐야 하는가. 돈과 시간을 들일 만큼 매력적인가.
“그래서 내가 왜 가야 하지?”
공연을 만드는 사람은 대개 작품의 완성도를 말한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참여합니다.” “새로운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모두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관객은 다른 질문을 떠올린다.
“그래서 내가 왜 가야 하지?”
예술을 깎아내리는 질문이 아니다. 관객이 치러야 할 대가가 있어서 나오는 질문이다. 티켓값만이 아니다. 시간을 비우고, 이동하고, 때로는 다른 약속을 포기해야 한다. 관객은 공연을 산다기보다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공연에서 얻을 경험과 맞바꾼다.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한 공연이 인천문화예술회관의 〈커피콘서트〉다. 2008년에 시작한 이 공연은 처음부터 주부를 주요 관객으로 정하고 기획했다. 공연 시간은 대부분의 마티네 콘서트보다 늦은 오후 2시다. 담당자는 바쁜 아침을 보내고 오후 2시쯤 되어야 겨우 한숨 돌리는 주부들의 일상을 생각했고,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를 공연과 엮었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친구나 지인과 점심을 먹고 공연장에 와서 갓 내린 커피를 마신 뒤 공연을 보고, 저녁 전에 집으로 돌아간다.
〈커피콘서트〉가 판 것은 공연 한 편이 아니라 ‘일상 속의 오후 한때’였다. 작품을 설명하기 전에 관객의 하루에 이 공연이 들어갈 자리부터 만든 것이다. 2021년 무렵 음악저널 보도에 따르면 누적 관객은 7만 3천여 명이었고, 조기 매진이 이어지는 인천의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음악, 다른 진입로
영화관 앞 포스터는 완성도를 설명하기 전에 배우와 장르, 분위기와 볼거리부터 보여 준다. 관객은 몇 초 만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인가"를 판단한다. 그런데 많은 공연 홍보물은 작품명, 출연자, 날짜, 장소, 가격만 늘어놓는다. 관객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 공연을 보면 나는 무엇을 경험하는가"에는 답하지 않는다.
하남문화재단의 마티네 콘서트 시리즈 〈미술관으로 간 클래식〉은 이 지점을 잘 보여 준다. 영국, 스페인, 미국,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관과 작품을 따라가면서 거기에 어울리는 클래식 연주와 도슨트 해설을 함께 들려주는 공연이다. 1회차 '영국 편’에서는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을 중심으로 회화사의 흐름을 짚으면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했다.
음악만 보면 낯선 곡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관객이 들어오는 문이다. "목관 5중주 연주회"였다면 지나쳤을 사람도 "명화와 함께 듣는 클래식"에는 발길을 멈춘다. 1회차는 예매를 열자마자 매진되어 시야제한석까지 추가로 열었다. 관람객 만족도는 95%였고 "공연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2회차도 예매 직후 전석 매진되었고, 하남문화예술회관은 이후 회차를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옮겨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공연의 상품화는 예술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관객이 좋은 작품에 닿을 수 있게 진입로를 놓는 일이다.
관객에게 맞춘다는 것은 작품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대중이 좋아해야 하니 예술성을 낮추자"는 결론으로 가면 곤란하다. 관객에게 맞춘다는 것은 수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관객이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가 좋은 예다. 이 공연은 흔히 떠올리는 가벼운 낮 음악회와 달리 저녁 공연 못지않게 진지한 선곡을 유지해 왔다.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를 했고,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모차르트, 차이콥스키, 베토벤 같은 작곡가를 깊이 파고드는 시리즈를 이어 갔다. 프로그램은 낮추지 않았다. 대신 배우 김석훈에게 해설을 맡겨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그는 관객이 지휘자와 연주자에게 무엇을 궁금해할지 고민하고, 날씨 이야기나 가벼운 농담으로 클래식 공연의 딱딱한 분위기를 푼다고 했다. 공연장 측은 그가 합류한 뒤 예매율이 오르고 관객층도 넓어졌다고 밝혔다.
작품을 한 음도 바꾸지 않고도 관객과 작품 사이의 관계는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쌓이면 작품의 폭도 오히려 넓어진다. 〈커피콘서트〉는 클래식 위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극, 무용, 국악, 판소리, 마임, 월드뮤직까지 다룬다. 담당자는 처음에는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오랫동안 관객과 신뢰를 쌓은 덕분에 지금은 다소 실험적인 무대도 무리 없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의 신뢰는 예술적 모험을 위한 자산이 된다.
객석 점유율 너머의 성과
객석 점유율은 물론 중요하다. 공연이 이어지려면 수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과를 객석 숫자 하나로만 판단하면 위험하다. 어떤 관객이 왔는지, 다시 찾아오는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지, 다른 공연이나 문화 활동으로 이어졌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국내 마티네 콘서트의 출발점인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를 만든 김용배 전 사장은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낮 음악회 관객을 저녁 음악회 관객으로 이어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공연 하나의 매출이 아니라 관객의 다음 걸음을 본 셈이다.
이 방식을 이어받은 지역 공연장들이 10년 넘게 낮 공연을 지켜 온 비결도 결국 '고정 관객’이었다. 재방문이 거듭되면서 마티네 콘서트가 관객 일상의 루틴이 됐다. 용인문화재단의 마티네 콘서트는 2018년 평균 객석 점유율 77%, 2019년 82%를 기록했다. 이런 안정은 한 번의 흥행보다 반복된 신뢰에서 나온다.
지역 공연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 번의 만석보다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이 생기는 것이 더 큰 성과일 수 있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일
앞의 사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고, 관객을 먼저 정했으며, 관객이 선택할 이유를 분명히 했다. 〈커피콘서트〉는 관객의 하루를, 〈미술관으로 간 클래식〉은 관객이 들어오는 문을, 성남아트센터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언어를 설계했다.
좋은 공연과 잘 팔리는 공연을 반대편에 세울 필요는 없다. 진짜 문제는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과정, 곧 좋은 작품을 좋은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빠져 있는 데 있다. 작품은 좋은데 관객을 모르면 예술적으로 성공해도 시장에서 외면받기 쉽다. 관객은 잘 아는데 작품이 빈약하면 시장에서 성공해도 오래 가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공연은 이 둘을 잇는다. 그렇게 만난 관객은 한 번 왔다 가는 손님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관계가 된다.
결국 두 공연의 차이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차이가 아니라 어디에서 공연을 바라보느냐의 차이다. 기획은 그 둘을 잇는 일이다. 작품의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 관객의 언어로 말하고, 관객의 취향을 따라가기만 하기보다 관객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경험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이 공연은 좋은가?"에서 멈추지 말고 “이 좋은 공연을 누가, 왜 선택하게 할 것인가?”까지 물어야 한다. 무대를 만드는 사람과 객석을 채우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의 미래는 그 둘이 처음부터 같은 질문을 함께 붙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욜드(YOLD).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
+

조민숙 아코르 한국 운영 총괄 부사장 선임
[욜드(YOLD)=안정미 기자]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그룹, 아코르(Accor)는 조민숙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