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위화(余华)의 장편소설 <원청(文城)>을 읽었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한달음에 읽혔다.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 매혈기>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흡인력은 여전했다. <원청>은 청말민초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가상의 공간 '원청'과 사라진 아내를 찾아 평생을 방랑하는 한 남자, 린샹푸의 이야기다. 북방의 지주였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 샤오솽이 가문의 금괴를 가지고 사라지자, 젖먹이 딸을 안고 그녀가 고향이라 말했던 '원청'을 찾아 남방으로 떠난다. 그러나 지도 위 어디에도 원청이라는 도시는 없었다.
처음에는 원청을 실재하는 장소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그곳이 인간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자 안식처,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간절한 바람 같은 것 말이다.

린샹푸는 위화의 소설 속 인물 중에서도 유난히 우직하다. 상식적으로는 포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낯선 남방을 헤맨다. 그의 끈질김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었다. 마음을 준 사람과 자신이 맺은 인연을 끝까지 지키려는 '신의(信義)'였다. 속임수와 약탈이 횡행하던 난세에 그의 우직함은 바보스러워 보이지만, 위화는 이를 끝내 숭고한 인간성으로 승화시킨다. <인생>의 푸구이나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처럼, 그에게도 거창한 영웅주의 대신 묵묵히 삶을 버텨내는 힘이 있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2부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역전이다. 1부에서 비정한 배신자로 보였던 샤오솽의 사연이 2부에서 과거로 돌아가며 밝혀진다. 두 남자 사이의 비극적 인연과 죄책감에 짓눌린 한 여인의 사정이 드러나며, 샤오솽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1부에서 린샹푸의 비극적 최후를 먼저 보여준 뒤, 2부에서 그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던 인물들의 과거를 조명하는 구성은 극적인 안타까움을 배로 증폭시킨다. 서로 아주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끝내 스쳐 지나친 운명의 아이러니는 작가가 배치한 가장 차가우면서도 애틋한 장치다.

위화(余华)의 작품 특유의 건조하고 잔혹한 폭력 묘사 역시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목격했던 작가에게 역사는 거대한 이념이 아니라 민초들의 몸에 가해진 구체적인 폭력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참혹함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밥을 먹고, 마을을 일으키며 삶을 이어나간다. 린샹푸가 평생 찾아 헤맨 원청은 지도 위에서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헛된 것이었을까. 원청을 찾아 방랑하는 동안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삶의 터전을 다졌으며, 곁의 이들을 돌보았다.

어쩌면 원청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고 싶다는 마음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견딘다. 책을 덮으며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당신의 마음속 '원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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