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늦게 밝아오는 아침

박정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9-28 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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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우리 집의 아침은 남들보다 늦게 밝아온다. 여전히 마음만은 청년 같은 일흔 줄의 나와, 나보다 생일이 다섯 달이나 빠르면서도 불의나 사회적 공분 앞에서는 여전히 참을성이 적은 마나님. 어느덧 두 아들이 모두 출가하고 이제는 둘만 남은 집이다. 둘이 살기에는 다소 넓은 집이지만, 집을 팔고 옮기는 번거로움 대신 이삼일에 한 번씩 운동 삼아 쓸고 닦으며 제법 너른 공간을 누리고 산다.

출근길을 서두를 직장인도, 학교에 늦을까 발을 구를 아이도 없으니,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방 안을 환하게 채울 때까지 마음 놓고 늦잠을 잔다. 흔히 나이가 들면 초저녁잠이 많아져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된다고 하지만, 나의 수면 습관은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현역 시절에도 이런 습관 때문에 강의 시간표는 늘 오전 10시 이후로 짜곤 했다. 반면 마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한 새벽형이다. 서로의 아침 리듬이 워낙 다르다 보니 일찍이 각자의 침실을 쓰기 시작해 어느덧 수십 년이 흘렀다. 그래도 요즘은 아침 일찍 마나님이 내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고 내가 무사히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 주곤 한다.

 

 

기상 시간이 다르니 아침 식사도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손때 묻은 지 십 년이 넘은 일리 아트 컬렉션 에스프레소 컵에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통밀식빵 한 조각과 냉장고에 남은 과일을 썰어 올리브유를 두르고 그릭요거트 한 숟갈을 곁들인다. 거기에다 40여 년 전 유학길, 잘츠부르크에서 처음 맞은 아침 식탁의 해프닝을 떠올리게 하는 삶은 계란 하나를 얹으면, 내게는 옛 추억까지 함께 차려지는 더없이 훌륭한 아침이다.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온 식단이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차림이었는데, 최근 소화기에 탈이 나는 바람에 잠시 비상이 걸렸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따뜻한 버섯 야채죽에 계란을 풀어먹고 있다. 조만간 예전의 그 정겨운 조식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참 좋다.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 외에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느지막이 맞이하는 아침마다 나는 내게 찾아온 노년을 가만히 예찬한다. 늦잠 끝에 마시는 진한 커피 한 잔의 향은 무한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은퇴와 함께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늙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하구나 싶다.

내가 말하는 늙음은 결코 육체적인 쇠락만을 뜻하지 않는다. 거실에는 소파가 있지만, 어쩌다 OTT 영화를 볼 때 외에는 기다란 통나무 테이블을 주로 이용한다. 여섯에서 여덟 명까지도 족히 앉을 수 있는 이 테이블은 식탁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독서 공간이다. 서재를 두고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서재 책상에 앉으면 자꾸 PC로 손이 가 독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통나무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질 때쯤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멀리 한강대교와 철교가 내다보인다. 해가 정오를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오후가 되면 강물 위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윤슬이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마침내 노을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면 그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아프리카 여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짐바브웨를 찾았을 때, 잠베지강에서 선셋 크루즈를 탄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거대하고 붉은 석양의 잔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카메라를 꺼내 드는 짧은 순간에 붉은 태양이 강물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짧았기에 오히려 더 강렬했던 그 석양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집 창밖으로 한강 너머 지는 노을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때의 잠베지강을 떠올린다. 창 아래를 내려다보면 20년 가까이 자란 아파트 정원의 나무들이 야산의 수목처럼 우거져 있다. 내가 직접 가꾸지 않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피어나는 꽃과 나무를 내 집 마당처럼 즐길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소유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나 중년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어쩌면 노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한유(閑遊)일 것이다.

느긋하게 인터넷 뉴스를 훑어본다. 세상은 여전히 욕망과 경쟁으로 분주하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애쓰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소란이 예전처럼 마음을 흔들지는 않는다. 세상의 욕망과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서 초연해지는 것, 만용이 사라지고 과욕이 씻겨 나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늙음이 주는 진짜 은총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삶에서 가장 좋았던 때를 꼽으라면 언제일까.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었을까. 열정으로 도전하던 청춘이었을까. 아니면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 결실을 맺던 장년 시절이었을까. 성취하고 인정받던 그 시절이 황금기였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 속에서 그리 행복하거나 여유롭지 못했다. 경쟁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삶의 본질을 놓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에 밀려 도착한 ‘노년’이라는 이름의 중간역. 그런데 막상 다다르고 보니 이곳은 내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축복된 땅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탐낼 것도 없이 욕망을 비워낸 마음의 들판. 그 비워냄이 오히려 더 큰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비로소 무엇이 삶의 최선이고 정도인지 조금은 똑똑히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생겼다. 

 

책임과 의무에서 한 발 벗어나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묶이지 않는 평화. 욕심이 줄어드니 온 마음이 아늑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휴대폰의 유튜브 구령에 맞춰 국민체조를 두 번 반복하며 몸을 푼다. 아침을 먹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 산책길에 나선다. 아파트 정원 길을 지나면 국립중앙박물관 마당과 용산가족공원으로 바로 이어지니 이보다 더 좋은 산책로도 드물다.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깨우고, 공원을 걸으며 하루의 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평생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고, 술은 위스키에 얼음을 띄운 온더록스를 가끔 즐기는 정도다. 아침 세수를 하다 거울을 보면 살이 빠져 무력해 보이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 서려 있다. 마음이나 컨디션보다 얼굴이 먼저 늙어가는 듯해 남들이 나를 실제보다 더 나이 들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즐긴다. 나를 어른으로 대접해 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작은 꿈이 하나 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손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느 방학 때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공부했던 잘츠부르크와 빈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잘츠부르크의 어느 골목을 손주의 작은 손을 잡고 걷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젊은 시절 바라보았던 풍경을 이제는 손주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꿈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건강을 다지고 삶을 활기차게 유지할 이유가 생긴다. 역시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어야 늙음을 늦추는 법이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니체가 말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내게 찾아온 운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누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노년의 가장 아름다운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도 눈을 뜨며 생각한다. 어제 누군가가 그토록 맞이하고 싶어 했을 이 ‘오늘’을 나는 선물 받았다.
늦게 밝아오는 아침. 커피 한 잔이 있고, 책이 있고, 창밖에는 한강이 있고,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있고, 언젠가 함께 잘츠부르크를 걸어볼 손주가 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곳이 나에게는 가장 완벽한 파라다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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