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좋은 책은 답을 건네고, 위대한 책은 질문을 남긴다. 좋은 책을 덮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책은 책장을 덮고 며칠이 지나서도 문득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몇 년 뒤, 혹은 수십 년 뒤 다시 펼쳤을 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온다. 그래서 위대한 책은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계속 읽히는 책인지도 모른다.
스무 살의 열병 속에서 읽었던 <데미안>과 일흔이라는 나이에 다시 만나는 <데미안>은 사실상 다른 책이다. 책의 문장은 그대로일지언정 그 문장을 받아안는 내가 달라졌고,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이 책의 의미를 판이하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정답을 제시하는 책보다는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 책들을 오래 곱씹는 편이다. 읽고 나면 무언가를 분명히 얻었다는 느낌을 주는 책도 좋지만, 책장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서 질문 하나가 오래 꿈틀거리는 책에 더 마음이 간다.
남은 한 해, 석 달 남짓 한 시간을 앞두고 나만의 독서 계획을 세워본다. 새로 나온 책들을 기웃거리기보다 이미 내 삶을 한 번 거쳐 간 책들을 다시 꺼내어 읽을 참이다. 일흔 줄의 나이에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줄 고전들이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답보다 오래 남아 있는 질문들의 목록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마음이 닿는 곳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고통은 무엇을 남기는가. 청년 시절에는 ‘의미’가 먼저 보였다면, 지금은 그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인간의 의지가 보일 것 같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다시 읽을 때는 스승의 지혜보다 제자의 조급함과 두려움이 더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이제는 나 역시 한 사람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내 손주에게 남기고 싶은 삶의 한 문장이 무엇인지 헤아려보게 될 것이다. 젊은 날에는 ‘자유’로 읽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이제 ‘정직함’이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아침 식탁을 비추는 소박한 햇살 앞에서 묻는다.
“충분함은 대체 얼마나 적은 것으로 가능한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인생)>을 다시 펼치면 비극의 참상보다 끈질긴 생명의 질감이 먼저 만져질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녕 축복인가, 아니면 거룩한 책임인가. 성악가로 무대에 서던 현역 시절,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만든 연가곡 <뒬시네 공주를 향한 돈키호테>를 더 실감 나게 부르고 싶어 집어 들었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다시 읽어볼 참이다. 그때의 <돈키호테>는 무대 위 표현을 위한 대본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다시 만나는 돈키호테는 우스꽝스러운 노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순수한 인간으로 다가올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가슴속 꿈을 버리지 않는 인간을 향한 가장 따뜻한 헌사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블로그에 <노래를 잃고서야 알게 된 감사>라는 글을 쓰며 떠올렸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다시 서가에서 꺼낸다. 소리를 내려놓고서야 찾아온 깊은 침묵 속에서 이런 질문이 묵직하게 번져올 것 같다.
“나는 정말 살아왔는가, 아니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았는가.”
공자의 <논어>를 펼쳐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를 읊조린다.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지. 젊은 날에는 고리타분한 교훈처럼 느껴졌던 문장이 이제는 오랜 친구와 나누는 다정한 대화처럼 다가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머리맡에 두고 하루 한 단락씩 읽어보고 싶다. 오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오늘 감사해야 할 것을 가만히 정리하는 아침 루틴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를 읽으며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나의 ‘노년 예찬’을 다시 들여다보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묻는다.“인간은 언제 비로소 ‘이 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는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품위를 배우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를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을 다시 만나고 싶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천국보다 오히려 현실적인 연옥의 고단함과 그 안에 깃든 희망을 읽고 싶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는 침묵과 스러지는 것들이 지닌 선명한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좋은 책은 읽는 동안 함께 걷는 친구이고, 위대한 책은 다 읽은 뒤에도 계속 내게 말을 건네는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새 책을 서둘러 찾아 나서지 않으려 한다. 손때 묻은 책들을 하나씩 골라 서가에서 다시 꺼내고, 읽기를 마친 책은 다시 차례로 꽂아둘 것이다. 간혹 어디론가 사라진 책이 있다면 짬을 내어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다시 만나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이미 읽은 책들이 이렇게 많이 내 곁에 남아 있었다니. 아마 이것도 노년이 주는 작은 선물일 것이다. 참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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