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천당은 가고 싶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박정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10-25 09: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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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아파트 헬스장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일상을 나누는 일흔 중반의 이웃 한 분이 아침 일찍 유머러스한 짧은 글 하나를 보내왔다. 신부님이 강론 중에 교인들에게 “지옥에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하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천당에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하니 모두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럼 지금 당장 천당에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하니 다시 고요해졌다는 유머 섞인 이야기였다. 결국 죽어서 가는 천당보다 지금 살아가는 이 순간이 더 나으니, 불평하지 말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교훈으로 끝을 맺는 글이었다. 

 

보내주신 성의에 답하느라 가벼운 덕담과 함께 답장을 보낸 후, 돌아서서 가만히 그 문장들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천당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한들 당장 떠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니. 참으로 인간다운 솔직함이다. 웃음 끝에 쓸쓸함과 온기가 함께 남는 역설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내일, 혹은 피안의 행복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정작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오늘, 이 미완의 일상인지도 모른다.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지금의 삶을 놓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삶과 맺어 온 끈질긴 애착 때문일 것이다. 물론 “불평불만을 거두고 지금 당장 행복하라”는 말은 다정하지만 때로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삶이란 그리 녹록지 않아서, 혹여 몸의 통증이 깊어지거나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무작정 ‘마음먹기에 따라 여기가 천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가혹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분명 지옥 같은 하루를 견뎌 내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삶이 소중하다는 것과 삶이 언제나 행복하다는 것은 결코 같은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을 억지로 부정하며 찬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지옥 같은 고단함이 밀려오는 날일지라도, 나를 지탱해 주는 아주 작은 온기들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아침 일찍 내려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 곁에서 무심히 안부를 물어주는 아내의 짧은 한마디, 산책길에 만나는 서늘한 가을바람, 그리고 내일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 한 권. 천당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은 조각들이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끝내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이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들이다. 천당이 정말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아침처럼 유머가 담긴 좋은 글로 안부를 나눌 이웃이 있고, 함께 식탁을 나눌 가족이 있다면 적어도 오늘 하루를 지옥이라 부를 이유는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천당에 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다만, 오늘은 아직 갈 생각이 없다. 오늘도 살아볼 만한 이유가 제법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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