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밀리언셀러 가수 이문세와의 인연과 추억

박정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8-25 08: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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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제법 오래전 일이다. 9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 유학에서 돌아와 겨우 자리를 잡고 강의와 국내외 연주 활동으로 한창 바쁘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가수 이문세입니다.”


‘이문세’?

그때나 지금이나 대중음악에는 관심이 없던 터라 그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 ‘가수’라면 대중음악을 하시나 봅니다?”라고 되물었더니, 그는 그렇다면서 자신이 ‘별밤지기’라고 덧붙였다.

‘별밤지기’는 또 뭔가? 갸우뚱하며 전화를 끊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에게 이문세라는 가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아빠, 그 가수! 얼굴 없는 영웅이에요.”

“얼굴 없는 영웅?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들의 부연 설명인즉, “요즘 인기 짱인 가수이고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 DJ인데, TV에는 잘 안 나와요”라고 했다.

“그 참 이상도 하다. 대중가수가 왜 TV를 기피하지?”


이튿날 약속 시간, 지금은 고인이 된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 씨와 함께 그가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섰다. 그리고 그의 넉넉하니 잘생긴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흠~ 그래서 TV 출연을 기피했구나!’ (ㅋ~)

​이 에피소드는 음반이 발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때마침 SBS 개국 기념 ‘자니 윤 토크 쇼’에 그와 함께 출연했을 때,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해 자니 윤 씨께서 던진 질문에 내가 농담 삼아 이야기하면서 방청석에 폭소를 안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집을 찾은 두 사람은 악보를 내밀며 듀엣 녹음을 제안했다. 내 분야가 아닐뿐더러 내가 노래해야 할 파트가 바리톤인 나보다 테너에게 어울릴 높은 음역대인 것 같다며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문세 씨 특유의 사람 좋은 넉살과 설득에 못 이겨, 며칠 뒤 우리는 결국 녹음실로 향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곡이 1991년 이문세 7집과 2002년 《Old & New》 앨범에 실린 ‘겨울의 미소’다. 이후 그의 몇 차례에 걸친 TV 출연 요청을 마다하는 바람에, 그가 그렇게 좋아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했던 그 곡은 시쳇말로 뜨지 못했다. 그저 제목에 ‘겨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덕에 지금도 겨울 한 철 라디오에서 가끔 얼굴을 내미는 노래가 되었다. 그때 방송 출연을 극구 사양했던 데에는 개인적 성향도 있었지만, 당시 클래식계에 닥친 웃지 못할 큰 사건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노래를 녹음하기 약 1년 전쯤, 나와 같은 은사님 문하에서 공부하신 큰 선배이신 故 박인수 교수가 가수 이동원 씨와 듀엣으로 ‘향수’를 불렀다. 그 곡이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자, 클래식계에서는 지금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국립 오페라단 정단원이었던 박인수 교수가 오페라단으로부터 제명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클래식계의 장벽은 그만큼 높고 경직되어 있었다. 막 교단에 서서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젊은 성악가였던 나로서는 그 여파를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이문세 씨와의 방송 활동은 일찌감치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문세 씨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세월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그때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요즘은 어떤가. 성악가와 대중가수의 경계라는 것이 아예 무색해졌다.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성악가들이 크로스오버 무대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과 사랑을 누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클래식 성악가와 대중가수가 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가 하나의 당당한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실 나는 요즘 젊은 성악가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 <팬텀싱어>를 통해 수많은 성악가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포르테 디 콰트로, 포레스텔라, 라포엠 같은 팀들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중 라포엠은 멤버 전원이 성악을 전공한 팀이라는데, 재미있게도 내 블로그 이웃인 ‘삐삐바라기’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자신이 라포엠의 ‘찐 팬’이라 소개하셨다. 성악을 전공한 내 이력을 보시고 무척 반가워하시기에,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어 슬그머니 ‘호구조사’를 해보니, 라포엠의 막내 박기훈 님이 서울음대 성악과의 까치까치 까마득한 후배가 아닌가.

참 세상 많이 변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성악가가 대중가수와 노래 한 번 같이 불렀다가 클래식계의 눈총을 받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성악 전공자들이 TV에 나와 마음껏 대중가요를 부르고 수많은 팬의 사랑을 받는다. 그 시절 끝내 방송 요청을 사양했던 나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경계 없이 자유롭게 노래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반갑고 신기할 따름이다.

이문세 씨의 서운했던 표정이 미안함으로 떠오르는 오늘 밤, 까마득한 후배의 목소리가 담긴 라포엠의 노래를 꼭 한 번 찾아 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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