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하 일상과 생각 / 가장 다정한 경고

박정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6-08-22 1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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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박정하 칼럼니스트] 살아가다 보면 별일 아닌 일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는 날이 있다. 오늘 나는 집 가까운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삐끗했다. 서너 계단을 미끄러지며 각진 모서리에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황급히 난간을 붙들고 일어섰다. 다행히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주위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우스꽝스러운 꼴을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렸다. 부딪힌 엉덩이가 뻐근하게 아파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오늘 일을 복기하다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빙판길에 미끄러졌을 때 아픈 것보다 창피함이 먼저 들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뜨듯, 이 나이에 '남의 눈'을 먼저 의식하며 민망해하는 모습이라니. 아직도 내 마음은 청춘이구나 싶어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리곤 ‘그만하길 다행이지.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어.’라고 생각하던 순간, 문득 언젠가 읽었던 하인리히의 통계적 법칙인 ‘1 : 29 : 300’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말하자면 하나의 대형사고 뒤에는 스물아홉 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그 이면에는 부상은 없었지만 아찔했던 ‘아차 사고’가 무려 300번이나 존재한다는 안전공학의 오래된 법칙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늘 계단에서 삐끗한 발걸음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사소하지만 또렷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마음은 아직 청년인데, 몸의 근육과 반응 속도는 어느새 세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작은 경고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흔히 불행이나 사고를 '갑자기 찾아오는 불운'이라 여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담벼락은 무너지기 전에 미세한 금을 먼저 내놓듯이, 오래된 집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 말 때문에 갈라선 것처럼 보여도, 그 한마디는 그날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무심코 넘긴 서운함, 하지 못한 말, 조금씩 멀어진 눈빛들이 수없이 켜켜이 쌓인 끝에 일어난 결과다.

자동차 계기판에 주황색 경고등이 켜졌다고 해서 차가 당장 멈춰 서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직 더 달릴 수 있을 때 경고등은 불을 밝힌다. 나를 겁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괜찮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오일을 한번 점검해 주세요. 연료도 조금 보충해 주세요.” 하고 다정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고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 보기로 했다. 경고는 불행의 전조가 아니라, 아직 궤도를 수정할 수 있다는 삶의 다정한 배려라고. 

 

발을 삐끗하여 엉덩방아를 찧었던 그 순간, 삶은 나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속삭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계단을 내려갈 때 조금 천천히 발을 디뎌보렴.”
 

사소한 것을 작다고 무시하지 않는 것, 금이 아주 작을 때 들여다보고 경고등이 희미할 때 잠시 걸음을 늦추는 것. 삶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이에게 경고는 재앙의 시작이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도록 내밀어 주는 가장 다정한 손길이다.

오늘 밤, 몸에 든 작은 멍을 살피며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물어본다. 내 삶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며 조용히 반짝이고 있는 또 다른 경고등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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